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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by 토닥토닥서재 2020. 3. 31.

시들지 않고 우아하게 지는 동백꽃처럼

이해인 수녀의 신작 시 100편과 생활이야기 100편

 

이해인

마음산책

2014.11.25.

 

 

 

 

약 기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계속 나른하고 졸린 상태가 계속되니

정신마저 몽롱한 것 같다.

깨어 있도록 내가 나를 길들여야겠다.

서울에서 보내준 커다란 꽃묶음이 어찌나 곱고 화려한지

절로 마음이 밝아진다.

"쾌유를 빈다"는 메모와 함께

안개꽃, 헬레니움, 알스트로에메리아 들이 내 앞에서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꽃은 늘 존재 자체로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아프니까 더욱 체험하게 된다. (p238~239)

 



 

 

주말에 딸과 카페에서 각자 공부와 책을 보고 집 가는 길에

화원에 들려 프리지아 한 단을 샀습니다.

봄에 프리지아 한단을 사서

꽃병에 담아 두는 게 몇 년 전부터 연례행사입니다.

그래야 봄이 정말 온 것 같아서.

책상에 노트북과 모니터와 각 종 선들이 있는 삭막한(^^;;)

아들 책상 위에 3일을 두었습니다.

남자아이들에게 일부러 꽃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아이가 어렸을 때 어느 책에서 본 이후로 

해마다 벚꽃이 피면 같이 밤 산책을 나가기도 했어요.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거리를 산책하면서 꽃을 보았습니다.

 

 

 

 

그 화병을 오늘 제 책상 위로 가지고 왔습니다.

물을 갈아주고 쳐다보니

이해인 수녀님의 말씀처럼 

존재 자체로도 기쁨을 주네요.

게다가 약(감기약) 기운 때문인지 몽롱한 기분으로 꽃을 보는 상황이

수녀님의 글과 비슷하여 더 와 닿습니다.

 

 

 

 

 

흘러야 산다

 

구름도 흐르고

물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고

 

아픔도 흐르고

슬픔도 흐르고

 

흐르는 것은 

더 아름답네

 

내 몸속의 피도

흘러야 하는데

제대로 흐르질 못하여

내가 아픈 것이라고

많이 움직이지 않아

더욱 아픈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을 하네

 

그래서

나는 지금

꼼짝 못 하고 누워서

우두커니 하늘만 보네

 

창밖으로

바람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는데......

 

 

 

어디가 아프셨나 궁금하여 찾아보니

2008년에 대장암 수술을 하셨다 합니다.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장 직장암으로 30cm 정도의 장을 잘라냈다.

종양 크기는 약 5cm였고, 암세포가 림프절로 전이된 3기였다.

생존율 30%. 

수술 중에 난소에 이상이 발견되어 한쪽 난소도 절개했다.

수술 후 6차까지 모두 30번의 항암치료를 받았고, 방사선 치료도 28번 받았다.'

 

부정보다는 긍정, 원망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 또한 힘이 되었다고 하네요.

수녀님은 치료 후 자신이 살던 부산의 수녀원으로 내려가

암에 걸린 수녀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 책에 죽음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암환자 그들의 곁에서 함께 하셔서구나 생각했습니다.

 

 

 

 

1.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살걸.

2.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걸.

3. 내 감정에 충실하며 살걸.

4. 일 좀 덜할걸.

죽기 전에 후회할 이 순위가 적힌 오늘 자 기사를 본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도록 은총을 구하자.

아름다운 구슬을 꿰는 마음으로 나의 시간들을 아껴 써야지.  (p241)

 

 

 

 

이 시를 보니 수녀이기 전 한 인간의 모습이 보입니다.

마음의 의지만으로 육체의 통증을 전부 이겨낼 수 없으니까요.

 

 

 

 

바깥 날씨는 너무 추운데 그래도 침방에 들어오면 

포근하고 따스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오래되어 낡은 옷들이 다 헤어지니 기워야만 입을 수 있는데

바느질 방에 수리 청구서를 내었더니 기술적으로 기워서 소매가 새것처럼 되었으나

전체적으로는 표시가 많이 난다.

헌 옷을, 낡은 옷을 입는 편안함으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  (p243)

 

 

오늘은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 4주기.

그분의 따스하고 편안한 미소가 그리워진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다른 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이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p245)

 

 

역시 집은 얼마나 편안하고도 좋은 곳인지.

한없이 잠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음을 감사드리면서 다시 있는 자리에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늘 보던 이들을 새롭게 사랑해야지. (p250)

 

 

 

 

 

일흔 살 생일에

 

일곱 살의 어린이 마음으로

일흔 살의 생일을 맞는 오늘

아침부터 자꾸만

자꾸만 웃음이 나오네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갇혀 있는 내 마음속의 아이가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까요?

조용히 물어보는데

나는 무어라고 대답할까

사랑을 더 많이 해야 철이 들 것이니

이젠 그만 창을 열고 나와서

하늘을 보라고 해야겠지

진짜 한 번 큰 어른이 되라고 해야겠지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고희의 나이에 이르러

다시 한번 희희낙락한 동심을 

회복하면서

부끄럽지만 행복해야겠다

 

 

 

 

낮에 걷다가 올려다본 목련나무

 

 

일흔 살 생일.. 어떤 기분이 들까요?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육체는 점차 스러져가는 중이어도

마음은 여전히 젊을 거라는 걸.

 

 

 

 

 

 

 

 

 

'일상'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everyday life.

한 달 넘도록 코로나로 예전의 일상하고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일에 맞춰 마스크 줄을 서야 하는 번거로움,

사회적 거리두기로 오는 외로움, 상실감.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상황이 나아지기는 하려나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이것도 일상이잖아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답답하다 불평만 할 게 아니었네,

지금도 내 일상이니까 여기에 적응하고

소소한 즐거움 찾고, 하던 거는 계속 잘하면 되겠구나..

그냥 이렇게 묵묵히 일상을 지켜야지.

 

수녀님의 잔잔하고도 절절한 글이

약에 보대끼고 있는 저에게 위로를 주는 밤입니다.

 

 

 

 

 

 

#프리지아꽃말#천진난만#자기자랑#청함#너를응원해#땅위에서다시피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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