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우리집 어항 스토리

by 토닥토닥서재 2021. 11. 27.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은 2주마다 어항을 청소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아들 방에 있는 30하이큐브(30*30*35cm) 어항을 내가 관리하고 있는데 2주마다 40%의 물을 환수해야 한다. 물만 바꿔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항 벽면의 이끼도 박박 닦아야 하고, 여과기도 닦고, 스펀지도 빨고, 온도계, 히터도 꺼내서 닦아야한다. 물 빼낸 김에 수초도 다듬어 준 다음, 받아둔 물을 약 30분동안 천천히 채워준다. 

 

이 비극의 시작은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에서 받아온 금붕어 한마리로 시작되었다. 투명컵에 담겨서 우리집에 온 금붕어는 좁은 컵안에 있는 것이 측은지심을 발동하게 했다.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해준 것이 첫 어항이다. 그 후 어항에 맞는 용품을 사러 수족관을 들락거리다 구피도 사고 다른 물고기도 사게 되면서 어항이 2개가 되었다. 

 

어항이 3개로 는 것은 단독으로 키워야 하는 베타때문이다. 수족관에서 지느러미를 펼치고 유영하는 베타의 몸짓은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각양각색의 선명한 지느러미로 헤엄치는 베타가 우리 아들을 홀렸다. 그래서 우리집에 데려왔다, 소중히 품에 안고서.

 

초등학교 5학년 때던가, 애지중지하던 물고기가 죽었다. 추석 연휴때였다. 아들은 심하게 오래 울었다. 외할머니집에 몇시까지 가기로 한 것도 미뤄야했다. 우리는 물고기를 작은 상자에 담아서 놀이터 뒤쪽 나무 밑에 묻어주고, 십자가도 꽂아주었다. 그 작은 무덤 앞에서 가족 모두 기도를 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될 무렵 이사를 했다. 물론 3개의 어항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물 온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했다. 이삿짐센터에는 맡길 수가 없어 자동차로 직접 하나씩 날랐다. 아주 난리였다.

 

아들의 물생활은 중학생까지 이어졌다. 지금처럼 이산화탄소통을 놓거나 제대로 된 여과기를 설치하지 않아서 어항의 환경은 금새 나빠졌다. 어항 벽면에 이끼가 생기자 아들은 놓칠새라 관찰일지를 쓰더니 주제탐구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덕분에 이끼가 잘 자랐다.

 

아들은 이산화탄소 만드는 장치를 만들어 고무호스에 숨을 불어넣기도 하고, 조명을 때맞춰 켜고, 물고기 밥을 여러가지 준비해서 먹였다. 어항물을 환수할 때는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 온 가족이 동원되었다. 화장실로 가지고 가서 물고기를 다른 곳에 옮기고, 바닥자갈을 헹구고, 벽면을 닦고. 지금 생각하면 어항 관리에 지식과 장비가 없어서 관리의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고 새벽 1시에 학원이 끝나다 보니 아들은 물생활을 잠시 접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 아들은 대학생이다. 1학년 여름방학때 아르바이트를 하더니 대뜸 어항을 사겠노라 선언했다. 다시 어항이라니..말리고 싶었지만 다 큰 아이의 취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가족이 다같이 수족관에 갔다.

 

와우, 이렇게 편리한 장비가 많다니. 전에 사용하던 것에서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을 새로 다 장만해야 했다. 어항과 어항 놓을 장, 여과기, 이산화탄소통, 조명, 수초, 물고기, 온도계, 수초가위, 집게 등등.

 

아들은 직육면체라는 블로그를 만들고 그곳에 어항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물생활 입문자가 보면 도움될 내용이 많다. 수족관 투어도 여러번 다녀왔다. 집 근처 수족관은 매주 가고, 좀 먼 곳은 같이 갔다. 둘이서 성북동 수족관에 갔을 때다. 수초 전문 수족관이었는데 카페를 겸하고 있었다. 어항 사이에서 커피를 마시는 환상적인 경험을 아들 덕분에 해봤다.

 

"엄마, 이것 좀 봐봐. 나도 이거 키워볼까?" "아니." "엄마, 이것 좀 봐봐. 이 아쿠아스케이핑(어항 꾸미기) 정말 멋있지? 나도 이렇게 해볼까?" "아니." 나는 말리고 싶다. 왜냐고? 너 곧 군대갈거잖아!

 

그렇다. 아들은 나에게 이 어항을 맡기고 강원도 산속으로 떠났다. 코로나로 아들은 딱 한번 휴가를 나왔다. 물고기와 새우에게 밥을 주는 것도 내 일이고, 1주일마다 수초 비료를 한번 펌핑해 주는 것도 내 일이고, 2주마다 어항을 박박 닦고 환수해주는 것도 다 내 일이 되었다. 한달마다 여과기 다시백을 바꿔 줘야하고 3~4개월마다 메인 여과기를 청소해줘야한다. 그리고 무사히 잘 자라고 있는지 매일 들여다보고 수초를 다듬는다.

 

아들이 남기고 간 4장짜리 어항 관리 메뉴얼.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이번 주 잊은 건 없는지 살핀다. 내가 군대가기 전에 어항을 정리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이렇게 짐을 져주고 가다니. 그래도 어쩌겠나. 아들 보듯 나는 오늘도 어항을 들여다본다. '형아 올 때까지 죽으면 안돼.' 

 

군 관계자님께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애들 휴가 좀 내보내 달라고. 11개월동안 단 한 번 나왔고, 앞으로 언제 나올 지 기약이 없단다. 나도 살리고 아들도 살리는 길은 휴가 뿐이다. 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