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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책 보기 좋은 카페

일요일 오후, 딸아이와 별다방에서

by 토닥토닥서재 2022. 1. 4.

일요일 오후, "카페 가서 책이나 볼까나." 하는 말에 "나도!" 하고 딸이 따라나섰다. 수능을 보고 실기 시험 준비 중인 딸은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서서 그림을 그린다. 학원 수업은 가, 나, 다군에서 선택한 학교 전형에 맞춰 월화수목금토요일 진행되고 일요일은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일주일 내내 학원에서 산다. 공대 간 아들 입시 때와는 또 다른 미대 입시생이다.

"오늘은 학원이 아닌 다른 곳이 필요했어."


매일 강행군으로 실기시험 준비에 고단했을 아이의 기분도 풀어줄 겸 같이 집 근처 커피집에 왔다.

"엄마, 나는 캐모마일. 저거 겨울 한정이래. 그리고 케이크는 이거 슈크림 가득 바움쿠헨"

아이는 전면 메뉴판과 케이크 진열대를 빠르게 훑어보며 말한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딸아이는 책 조금보다 폰으로 셀카를 찍다 그림을 좀 그리다 한다. 우리는 같이 커피집에 종종 온다. 아이는 문제집을 풀거나 책을 보는데 주로 셀카 찍는 걸 좋아한다. 여기 있는 동안 내 핸드폰 갤러리는 다른 듯 비슷한 포즈의 딸아이 사진으로 수십 장 금세 채워진다.




가져온 <습관을 조금 바꿨을 뿐인데 잘 풀리기 시작했다>라는 책을 읽다 보니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내 장점에 대해 물어보자란 내용이 나왔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사친처드리라는 인도 사람이다. 인도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을 했다. 일, 관계, 인생을 바꾸는 48가지 작은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나의 장점을 물어봐라, 그것이 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무기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자신감과 방향을 잡아줄 것이란 대목이었다.


"네가 보기에 엄마의 장점이 뭐야? 3가지만 말해봐."
"어.. 잘하는 거? 장점?" 잠깐 생각하더니, 계획을 잘 세우고 지킨다, 빈틈이 없다, 꾸준히 한다란다. 그리고 까르르 웃으면서 한 말은 살이 부드럽다였다.

"엄마 살 부드러워, 히히" 




부드러운 치즈 케이크는 다 먹었고, 커피도 거의 다 마셨다. 아이는 폰을 좀 보더니 다시 책을 본다. 우리 딸의 장점은 뭘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밝고 긍정적이고 잘 웃는 것, 그림을 잘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 도덕성이 강해서 규칙을 잘 지키는 것,  친구들하고 잘 지내는 것, 할아버지, 할머니께 잘하는 것 등등 참 많다. 가끔 자신보다 남을 더 배려하는 모습이 보여 걱정이지만 정도에 대해 알려주고 있으니 나아지겠지.

 

아이의 천성은 때 묻지 않은 순백의 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께는 웃음을 주는 정 많은 손녀이고, 집에서는 따뜻함을 주는 아이다. 너는 그렇단다, 소중한 우리 딸.

집에 가는 동안에도 내 팔짱을 끼겠지. '엄마 좋아.' 하고 말하겠지. 마주 앉은자리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너무 예쁘구나. 조명빨인가. 네가 원하는 대학, 실기 시험 보는 날에는 온 우주의 기운이 너에게 깃들기를, 그래서 꿈을 펼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너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우리 최선을 다하자.

 


이 글을 쓴 지도 몇 주가 지났다. 별다방에서 초안을 쓰고, 이후 여러 번 다듬었는데도 글이 듬성듬성하다. 아이와 나눈 대화와 분위기, 생각이 두서없으나, 후에 아이가 이 글을 읽었을 때 나와 있었던 시간을 기억할 수 있으면 되었다.

 

내일은 딸아이의 고등학교 졸업식이다. 코로나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한다. 혹시나 운동장에서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는지 학교에 문의했더니 아이들만 참석하는 졸업식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오십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졸업식이 되겠군.

 

우리 딸 졸업 축하한다. 꽃 같은 나이 스무 살, 앞으로 펼쳐질 너의 인생을 응원한다. 우리 딸,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