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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일상 새로 고침 안내서,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

by 토닥토닥서재 2021. 9. 12.

제목 참 잘 지었다. 경제적 독립을 이뤄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 소망인 나에게 꿈같은 말이다. 망설임 없이 집어 들고 목차를 훑었다.

 


1단계. 일상 새로 고치기
"회사를 떠난 후 내 삶의 기준은 명확해졌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일 것. 그 하나면 충분하다."

2단계. 일상 새로 느끼기
"하나의 목표에 나를 가두지 않겠다는 결심은, 무엇이든 가벼운 마음으로 해볼 수 있는 자유를 갖게 한다."

3단계. 일상 새로 다듬기
"어쩌다 흔들릴지언정,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게 살기로 한 것은 분명 나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이다."

4단계. 일상 새로 채우기
"많은 것을 기꺼이 내려놓지 않으면 또 다른 나를 깨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5단계. 일상 새로 즐기기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쌓아가면서 가벼운 희망들을 이루고 품으며 살아가는 것 또한 희망이다."

목차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일목요연하게 담겼다. 글그림 김강미,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경력이 있는 작가는 글도 글이지만 깔끔하고 귀여운 일러스트를 잘 그리는 분이었다.

작가는 회사를 왜 그만두었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로 맡은 프로젝트가 잘 안 풀리자 상사는 지금 일어난 모든 사태를 이 잡듯이 요목조목 짚으며 '네 책임이야'라고 했다. 기존 진행하는 일도 많은데 또 일을 물고 와서 복잡하게 돌아가는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팀원들의 원망도 받는다. 누가 봐도 거절했어야 할 일이라 책망하지만 늦은 후회였다. 다른 팀장들이 고개를 돌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사회에서 영악하지 않은 것은 미덕이 아니다. 영악함은 실력보다 생존이 먼저인 사회의 필수 덕목이었다. 그것을 간과했던 자신의 부족함과 사회성 결여, 팀원들의 민폐, 번아웃 상태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표를 쓰기로 결심한다.


회사를 떠난 후 삶의 기준이 명확해졌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그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잊기보다 기억하기로 했다. 하나하나 더 또렷하게 기억해내며 그 속에서 허둥거리는 나를 위해 '멈춤' 버튼을 누르고, 흔들리는 내 어깨를 차분하게 감싸 안으며 나를 위로하고 꼭 안아줄 것이다. 그리고 내게 말해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라고. 결론 없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도,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넋두리 같은 후회도, 이제 더 이상 내 몫이 아니라고. p53 다 잊어버려 중


나라면 어땠을까. 작가처럼 '시간은 약이다'란 말을 의심했을까. 기억을 도려내고 싶은 흑역사가 있다. 나는 매일 머리가 아팠고 자주 울었다. 그 속에 내몰려진 피치못할 상황이 있었고, 그 망할 환경을 만든 사람을 원망했다. 나는 곧 괜찮아질 거란 말만 반복했다. 나약하고 독하지 않는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제대로 대항해 보지 못했던 어리고 힘없던 내가 아직, 그 속에 있다. 되돌릴 수 없는 후회, 이제 내 몫이 아니라는 작가의 말을 곱씹어본다.

 

남에 의해 흔들리는 인생은 그 무엇보다 슬프고 아프다.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말을 스스로 입증하게 한다. 하지만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세상과 다를 뿐이다. 내 마음대로 살기로 했으니까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습관처럼 부지런히 스스로에게 다정한 말들을 건네줘야 한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가끔 세상의 바람에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니다. p108 다정한 말 한마디 중

 

나를 먼저 챙겨주자


작가는 깨알 같은 행복과 소박한 즐거움을 부풀리기 위한 레퍼런스(참고자료)를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처럼 레퍼런스 폴더를 구분해서 차곡차곡 담아보라고.

 

어떤 장소에 가서 커피를 마셔야 더 맛있게 느껴지고, 어디로 산책을 가야 기분이 두 배로 좋아지는지, 온종일 비가 오는 날엔 어떤 음악이 어울리고, 기분 좋게 취해서 지인들에게 호기롭게 들려주고 싶은 시 한 편은 무엇인지, 내 일상의 바스락 거림이 들리는 작지만 상냥한 레퍼런스들. p62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잔잔한 재즈가 흐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비가 세차게 오는 늦은 오후였고, 한껏 노란 조명등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그러다 이 문구를 보니 작가와 한없이 긴 실로 연결된 기분이 들었다. 

  일 말고 다른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당신을 위한,

또 다른 나를 깨우고 싶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상 새로 고침’ 안내서  

 

 

더 이상 확신에 찬 삶을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되돌아보면 나의 확신은 오만에 가까웠고, 자만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나약한 마음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저 나를 이해하면 된다. p266 많은 것들이 잘 지나가도록

 

많은 것들은 잘 지나갈 것이다. 나를 찾고, 내 일상을 잘 찾는다면 중요한 것을 놓쳐서 후회하는 일은 줄 것이다. 일 말고 다른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분이라면, 또 다른 나를 찾고 싶은 분이라면 도움이 되어 줄 책이다. 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