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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밤 12시 감성, 잔잔히 행복하고 은은히 사랑하고

by 토닥토닥서재 2021. 10. 4.

퇴근길에 햄버거집에 들렀다. 키오스크로 음료를 주문했다. 무인 주문 기계인 키오스크는 내 키보다 커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체온을 측정하고 QR을 찍은 후 거리두기 의자에 가방을 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차도 쪽으로 난 큰 창밖으로 가로수가 노랗게 빛났다. 안을 쓱 둘러보니 둘이서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테이블, 아이 둘을 데리고 온 가족 한 팀, 그리고 혼자 핸드폰을 보며 햄버거를 먹는 사람이 네 명이다. 혼밥은 이제 어색한 풍경이 아니다. 자기만의 속도로 음식을 먹으며 영상을 보거나 뭔가를 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새벽이 시작되는 시간, 12시의 감성을 사랑한다는 작가는 제목 옆에 '12시의 감성을 소소하게 담은 책'이라고 적었다. 12시라, 새벽 운동을 할 때는 그 시간까지 깨어 있지 못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잠들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시간이다. 12시 감성을 느낄 틈도 없다. 그 시간에 읽었으면 감성이 더해졌으려나.

 

 

그런 사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가끔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여겨질

일이라도 내가 이야기할 때만큼은

내 편이 되어주고 공감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어느 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정도로

슬퍼하고 있을 때 말없이 내 옆에 함께 앉아

묵묵히 지켜주고 눈물을 나눠줄 사람이,

정말 간절했다.

 

 

'정말 간절했다'니 순간 책장 넘기는 것을 멈췄다. 마음 둘 곳이 없었나, 하긴 종종 그런 때가 있지, 세상 나 혼자 뚝 떨어져 있는 듯한 시간이. 옆에서 지켜봐 주고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 내 의견에 공감해주고 힘들 때 어깨를 감싸주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도 하지 않나. 먹고 자는 것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라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욕구이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 응원을 얻고, 위로를 받는 것은 정말 간절히 필요하다. 

 

 

어땠을까

 

정말이지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미숙할 때 사랑하지 말고

지금쯤 사랑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

그랬으면 이렇게 아는 얼굴을 지나쳐

가야만 하는 상황이 아프지 않았을 테고,

추억을 머금은 사람인데도

아무 말 못 하고 지나쳐 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텐데.

 

 

지나고 나면 후회되는 일들이 많다. 그러면서 인간은 성장하는 거라고 위안을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면 자신이 한없이 미워진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은 후회할 일을 줄이는 거라고 한다. 세월의 경험에서 터득한 능력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 넘어지고 다치는 시행착오가 생기면 회복이 어려우니 더 이상 내상은 만들지 말라는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내 상태와 상관없이 사랑이란 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온다. 사랑 앞에서 우리는 늘 미숙한 인간 아닐까. 같은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과 아무 말 못 하고 지나쳐 가야만 하는 상황이 먹먹하다.

 

 

 

지금쯤이면

 

어렸을 때는 지금쯤이면

내 나이다운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았고

열정 가득한 삶일 것만 같았다.

 

 

 

어렸을 때 나는 20살까지만 계획이 있었다. 그 이후엔 어떻게 되겠지 막연했다. 할머니는 '넌 꼭 의대를 가야 한다'라고 하셨다. 중학교 때 전교 몇 등 까지 주는 금배지를 달고 다녀서 그게 말처럼 될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나를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후쯤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그즈음 집 형편이 어려워져 다니고 싶은 학원도 독서실도 갈 수 없었다. 과외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오래된 티비에서 나오는 EBS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어렸을 때 나에게 멘토가 있었다면, 꿈과 희망을 놓지 않게 해 줄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미적분과 통계 문제와 칠판에 길게 쓰인 화학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내 나이다운 삶은 무엇일까. 내 삶에 열정은 있었을까. 주문한 음료가 거의 다 비워질 때쯤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작가는 '한 아픔에 머물러 있지 말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 걸어가'라 제안한다. 물이 흐르듯, 시간이 흐르듯 이별의 아픔도 흘러가게 두자. 내가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것을 은은하게 사랑하고, 그 속에서 잔잔한 행복을 찾고 느끼는 것, 삶을 대하는 태도로 삼아봄이 어떨까. 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