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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은행나무의 가을나기

by 토닥토닥서재 2020. 11. 2.

휴일 오후, 운동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집에서 헬스장까지는 버스 정류장으로 두 정거장쯤 되는 데

길 양쪽으로 모두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관공서에서 나오셨는지 작업하는 분들이

한 은행나무 아래 커다란 파란비닐을 펼치고

나무 위로 올라가 긴 작대기로

가지를 마구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후두둑= 후드득=

 

비닐 안으로 밖으로 은행들이

마구 떨어졌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깐씩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해마다 은행나무 암그루에서 떨어지는 은행알의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해하니 떨어지기 전에

미리 떨어뜨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맘때면 길가에 떨어진 은행들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지나가곤 합니다.

'앗, 폭탄이다.'

하기도 하고

'흙에 떨어졌으면 좋았을 걸. 이렇게 길에 버려지는구나.'

하는 마음도 듭니다.

 

 

 

 

 

 

열매처럼 보이는 이 은행알은 실제 열매는 아닙니다.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이기 때문에 씨앗 일부분이 변형된 것이지요.

특유의 구리구리한 냄새는 과육처럼 보이는 주황색 부분에서 발생합니다.

여기에는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부탄산이 있으니 조심해야하죠.

 

자웅이주인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를 구별해 심으면 열매가 생기지 않지만

실제 생장이 얼마 되지 않은 묘목의 경우 전문가조차 구별이 어렵다고 해요.

제대로 구별하려면 나무가 약 15년 정도 커야 한답니다.

2011년 산림청이 은행나무 성 감별 DNA 분석법을 개발해

1년생 묘목 단계에서 구분이 가능하지만

기존의 암나무 가로수를 대체하는 데는 어느 정도 자라야할테니

가을마다 벌어지는 이런 일들은 더 보게 될 것 같아요.

 

 

 

괜찮아?

 

 

집에 돌아가는 길

그 나무를 다시 만났습니다.

 

가지는 여기저기 꺾여있고,

잎사귀들도 쥐여 뜯겨 있었습니다.

 

한자리에 묵묵히 서서 눈비에도 바람에도 

훌륭히 가로수 역할을 해냈는데

냄새나는 은행을 떨군다고

이렇게 매몰차게 맞아야 하다니.

 

그냥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주면 안 되었을까.

우리가 좀 피해 가면 되지,

저렇게까지 나무를 뒤흔들었어야 했을까.

 

인생사도 팍팍한데

은행나무 너도 사는 게 고달프구나.

 

이 길을 지날 때마다

괜스레 미안해서

나무를 쳐다보게 됩니다.

 

 

(처음 글을 작성 후 3주만에 마무리를 했어요.

그동안 가로수 은행나무의 노랑색이 짙어졌네요.

나무들 사이로 걷고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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