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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

by 토닥토닥서재 2021. 8. 28.

제목만 보고 자기계발서인 줄 알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독서와 명상,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인생을 보람 있게 보낼 것이라는 내용이려니 했다. 첫 장을 넘기기 전에는.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프로필을 보니 자원봉사, 어학연수, 아르바이트, 여행, 직장 생활, 유학 등으로 40여 개 국가에서 살았고,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자 관련 분야 석사 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성실히 걸었고, 꾸준히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라는 소개글을 지나.. 두 번의 유방암 수술 후 다발성 전이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고 적었다. 아, 이런.

 

하루 24시간을 100세 인생으로 치환해보니, 내 인생은 오전 9시가 끝이라고 한다.
오전, 오후, 저녁과 밤이 남아있는데, 차가운 새벽이 물러가고 아침을 맞이하자마자 끝이란다.
내 하루는 그렇게 정해졌다고 한다.
설레었는데, 이제 멋진 하루를 살아내리라 다짐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시작이었다. 다운된 컨디션을 다독거려줄 책이 필요해 도서실에 갔는데 결국 이 책을 들고 나왔다. 

 

먼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써보았다. 그다음 의미 있는 일들을 썼다. 둘의 교집합을 찾으면 될 것 같았다. 쓰다 보니, 기력 없는 말기 암 환자의 라이프 스타일 자체가 장벽이었다. 순간순간을 모아 겨우 하루씩 살아내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나의 경험, 느낌,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 외에 뭘 더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결론지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 '쓰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게 하자. 거창하게 의미 있는 일을 찾으려고 시간이랑 씨름하지 말고. p31 이걸 왜 쓰고 있는 걸까요 중.

 

시간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다. 유한하지만 무한하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내일로, 다음으로 미룬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고통이 잠시 사그라들 때 글을 쓰는 작가에겐 '겨우 하루씩 살아내는' 아까운 시간, 내일이 안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절실함이 담긴 시간이다. 내가 시간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덧붙여, 내 부재가 당혹스러운 이들에게 글을 남기고 싶었다.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미리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은 게 아니라고, 조용한 사람이라 소란스러운 긴 이별이 두려웠다고. 누군가의 마음에 짐이 되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고. P32

 

이런 이별의 시간이 나한테 온다면 어떻게 할까. '소란스러운 긴 이별'은 나도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블로그에 차곡차곡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주어진 생이 다하는 날이 가까워진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장 한 장 편지를 남길 것 같다. 당신은 늘 내 세상에 살았고, 너무 고마웠다고.

 

매사에 잘 참고 견뎠다. 인내와 끈기 하면 나였다.
근데 자꾸만 자신이 없어진다.
사실 내가 두려운 건 죽음 같은 게 아니다.
매일 조금씩 진행되는 나에 대한 믿음의 상실,
자신감의 상실 같은 것이다.  p35 나와 약속을 했습니다 중.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 안 되니 고르고 또 고른다. 온종일 아무것도 못 하는 날도 많다. 글 쓰는 일이 매번 뒤로 밀린다. 마음먹었던 것을 자꾸 못 하고 안 하게 된다. 결국 잠들기 전, 속이 상하고야 만다.

겁쟁이가 된다. 이래도 저래도 아픈 상황에 오래 있다 보니 통증이 물러간 순간에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습관이 된 듯하다. 이렇게 저렇게 했을 때, 혹시 아프기 시작할까 두려운 거다. 몸만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마음도 덩달아 그렇게 된다. p91-92

 

가지고 있다고 여기던 것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 말하자면 살면서 차곡차곡 적금 붓듯 적립해온 자존감을 계속 까먹어 가는 기분이다. 작은 성취들로 다져졌던 나의 견고한 성이 모래성처럼 자꾸 힘없이 무너진다. 늘 쓸모 있는 인간이길 바랐는데 지금 나는 아무 짝에 쓸모가 없는, 아니 어쩌면 오히려 누군가의 무거운 희생으로 살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그러니까 내 소중한 당신은 암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p92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씩 잃어가는' 기분이 든다는 말을 들으니 또 울컥해진다. 책을 읽는 동안 초점이 맞았다 흐려졌다를 반복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님도 되었다가, 하나뿐인 누나를 바라보는 남동생도 되었다가, 또 자신도 되다 보니 책 주변에 휴지뭉치가 늘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자신에게 물어봐 주세요.

뭘 좋아하고, 뭘 잘하고, 뭘 하고 싶은지.

그리고 거기에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쓰세요.

저는 그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나를 사랑하지 않은 오랜 시간을 

후회하고 있어요.

 

 

생의 시간이 몇 시에 멈출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는 동안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이 말을 통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면 시간이 다했을 때 후회를 덜 할지도. 

 

후에 힘든 일이 있을 때 찾아보려고 필사가 길었다. 당장의 근시안에서 벗어나 큰 사이클에서 나를 볼 수 있게 해 줄 문구들이다. 자신이 잘 살고 있는건지, 살아가는 방향이 맞는 건지 생각이 많은 분이라면, 이 책 소리에 귀 기울여 보심이 어떨까. 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