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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100세 인생 선배의 선물 ,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by 토닥토닥서재 2021. 8. 22.

인생 100세를 24시간으로 환산한다면 나는 거의 정오에 다다랐다. 그래서일까 남은 오후와 저녁을 어떻게 보낼지 여러 생각이 든다. 인생 선배의 말을 담은 책들을 일부러 찾아보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1920년에 태어난 작가 김형석 님은 철학자이자 수필가이다. 연세대학교에서 31년간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내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1919년 생이셨으니 살아계셨으면 이런 모습이셨으려나. 문득 할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통해 행복을 찾아 누리려는 신념과 용기를 가지라는 말과 함께,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안다는 작가의 머릿말 끝에는 '2018년 정월, 백수를 맞이하며'라고 적혀있다. 백수.. 100세가 지나셨구나. 지금 살아계시나 걱정이 되던 차에 102세 때 찍은 강연을 TV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강연 내용이 책 내용을 복습하는 것 마냥 잘 들어왔다. 정정하신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인생의 길이 있기 때문에 공통점은 있으나 동일성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오십 대 중반까지는 주어진 일 때문에 세월이나 시간에 대해 자기반성은 갖지 못했다. 젊음에 관해서도, 늙어간다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오십 대 중반을 넘기면서부터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p13

 

병중이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7년 후에 아내마저 떠난다. 10여년 동안 구십을 넘긴 모친과 병중의 아내를 책임지는 일은 어깨에 쌀가마니를 두 개를 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 오랜 시간 병수발의 힘듦이 느껴졌다. 그리고 도움과 가르침을 주었던 오래 지기 친구들도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책 속에는 상실감이 곳곳에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사랑하던 아내가 떠나고, 같이 공부하고 연구했던 지인들이 떠났다. 곧 다시 보자한 친구와는 다음이 없었다. 100세 철학자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외롭고 허탈하다 말하고 있다.

이제는 나 혼자라는 외로움과 서글픔이 전신을 감싸는 것 같았다. 사랑을 주고 받을 삶의 앞길이 없어진 것이다. 두 분의 사랑을 영원히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p16
나는 더 오래 머물지 못할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다. 모든 인간적 능력을 상실한 가엾은 아내를 사랑한다. 그래도 나는 자신을 불행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사랑의 여백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외롭다. 이 세상에 혼자 있는 것같이 외롭다. 다른 가족들이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노력한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외로워진다. 동정을 받는 사람은 더 외로워지는 법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나의 외로움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때로는 몸부림을 치고 싶을 정도이다. p41 잃어감에 관하여 중


이제 정오를 지나는 나에게 이런 상실은 막연하다. 하지만 인생은 유한한 것이니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겠지. 감정 전이가 되어 착잡해진다. 이민규 님의 <생각의 각도>에 이런 말이 나온다. "가끔 무심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남았는지 세어보자. 남은 기회를 계산해봄으로써 그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이를 성경에서는 날 수 세는 지혜(Wisdom To Number Our Days)라고 한다." 인생의 유한성을 알고 삶에 대한 태도를 바로 잡으란 말일 것이다.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당신이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아깝고 소중한 것인지 작가는 지나온 세월 속 경험을 통해 전달하고 있었다. 

산다는 것의 의미

삶의 출발은 누구나 다 같다.
그러나 도달하는 목표는 모두가 다르다. 동일한 방향에서 앞뒤의 거리가 있는 것만이 아니다. 방향 자체도 제각기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아의 발견과 완성이라는 일차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p67

 

이 책에서 좋았던 두 번째는 이 '자아의식'에 대한 부분이었다. 자아의식을 남달리 강렬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막연하게 자아를 느낄 뿐 뚜렷한 개성과 자각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중 강렬한 자아의식을 갖는 사람은 자아 속에 남다른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이라 설명한다. 책 내용을 메모지에 요약해 보았는데 대략 이렇다.

강렬하고 뚜렷한 자아의식이 있는 사람
> 자아 속에서 남다른 문제의식을 느낀다
> 자신의 문제를 찾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 어떤 문제? 정신적 삶의 영역(학문, 예술, 사상, 도덕) / 사회적 삶의 영역(정치, 경제, 사회)
> 이러한 문제를 가진 우리가 해야 할 일: 정확하고 투철한 현실 파악과 이해, 모든 것을 바르게 보고 깨닫는 능력을 키워야.
> 현실과 현상을 올바르게 파악한 뒤 그 현실에 참여하는 용기와 책임이 있어야 한다.
∴ 자아성장 + 역사, 사회의 발전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천년의 질문>에서 조정래 작가가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관심한 것이다'라는 말은 촛불집회를 통해서 깨달은 것이기도 했다.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궁금하다면 백수를 넘게 산 철학자의 애정어린 말에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앞만 보고 달리는 삶 속에서 이런 쉼표 하나 두어봄직하다. 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