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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덜어내고 덜 버리고 | 제로웨이스트가 건네는 변화

by 토닥토닥서재 2022. 12. 6.

"바다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작가는 흥미를 끌기 위한 질문을 합니다. 여러 가지 추측되는 어원 중에 가장 교훈적인 답으로 "다 받아주어서 '바다'라는 이름이 생겼어요."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뭐 그럴 수도 있겠다'란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다 한 아이가 "그런데 이제 '안바다'네요."

아이들은 바다가 아픈 것을 예민하게 알아챕니다. 이처럼 바다에 사는 생물들이 사람이 버린 쓰레기로 고통받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마스크 줄이 새의 다리에 감기고, 거북이 코에 빨대가 꽂히고, 기름 유출, 해양 쓰레기는 동식물은 물론 우리의 미래를 위협합니다.

 


덜어내고 덜 버리고 / 오한빛 / 채륜 

토닥토닥서재_덜어내고 더 버리고



작가는 바닷가 쓰레기를 주우면서 일상의 쓰레기를 줄일 방법을 고민하고, 그 과정을 책에 담았습니다. 일회용품을 덜 쓰고, 자투리 채소를 요리해서 먹고,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옷의 개수를 늘리지 않는 등 평소의 노력을 보여줍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나름 일회용품 덜 사용하고, 분리수거도 잘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건 바로 화장품 용기에 대한 것입니다.

 

최근에 화장품 용기의 90%가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접하고 좀 놀랐다. 복합 재질을 사용하고 각종 첨가제를 넣어 재활용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예쁘고 고급스러운 쓰레기인 것이다. 용기의 소재보다 복잡한 사실은 포장재의 재활용이 잘 되는지 여부를 4단계(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로 구분해 포장재에 표시하도록 하는 재활용 등급 표기제에서 화장품만 '어려움' 표기는 예외가 될 뻔했다는 사실이다.

-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을 지속하는 일 p194



재활용 등급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재활용 어려움' 표시 예외 적용이라는 문구도 낯설었습니다. 책 후미에 있는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챕터의 QR코드를 찍어 녹색연합 칼럼을 열었습니다.

긴 기사를 정리해보면,

1. 환경부는 포장재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을 고려하고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재는 단계적으로 퇴출한다는 목적으로 '제품의 포장재 재질, 구조 등급평가' 제도를 도입.

2. 포장재의 의무생산자는 제조, 수입하는 포장재 및 이를 이용하는 제품에 대해 등급평가를 표기해야 함

3. 그런데 화장품 업계는 해당 제도가 도입된 지 2년이 지나고서야 10% 역회수하겠다고 환경부와 협약을 맺고, 재활용이 어려워도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하지 않겠다고 함

4. 이를 안 소비자는 알 권리 침해, 정확한 정보제공 회피, 다른 업계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함

5. 시민들의 분노로 화장품 용기도 예외 없이 재활용이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표시하게 됨.

 

표시하지 않는 용기를 생산해서 돈은 벌고, 폐기로 환경이 오염되는 것은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함에 제동을 건 것이죠.



토닥토닥서재_평소 사용하는 화장품과 샴푸통




화장품 용기에 많이 쓰이는 글리콜 변성 PET 수지(PET-G)는 PET가 아닌 더 나쁜 플라스틱입니다. 녹는점이 낮아 재활용 공정 중 고온 건조 과정에서 늘러붙어 재활용을 방해합니다. 부피가 크고 구조가 단순한 샴푸, 린스, 바디워시 제품도 이재질이 많아 재활용이 어렵고, OTHER로 표시된 것은 여러 가지 플라스틱이 섞여 역시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니 '그러면 왜 재활용 표시가 붙어있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재활용 마크만 보고 분리배출했고 당연히 잘 재활용되고 있으리라 여겼는데 말이죠. 막상 재활용 업체는 재활용 안 되는 것을 골라내는 불필요한 일을 해야 하고 이를 폐기 처리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생산, 소비, 폐기하는 일련의 과정 중에서 생산자의 역할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재활용할 수 있는 재질로 개선을 하고, 리필 재사용 체계를 만들고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재활용 어려움'을 표시하는 생산자는 당장의 생산 단가 절감과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한 화려한 포장용기가 아닌 재활용 할 수 있는 용기로 바꿔야 할 것입니다.

내 피부가 좋아지고 예뻐지는 것만 생각했지 사용한 화장품 용기가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무지함이 부끄러웠습니다. '재활용 어려움' 표시가 있는 것은 사용을 줄이고, 화장품 용기 회수 센터를 이용하고, 화장품 회사의 재활용 용기 생산과 회수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기후위기를 비롯한 환경재앙은 지구인들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방향과 방법으로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 하나 바뀐다고 달라지는 건 그냥 나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위한 일상의 작은 실천을 하면서 작가는 이전과 달라진 자신을 보았습니다. 달라진다는 것, 나 하나 바뀐다고 올라간 지구의 기온이 다시 정상으로 내려오진 않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작은 실천이 모아진다면, 생산자가 돈과 편안함을 쫒지 않고 환경 보호를 위한 고민과 책임감을 더해준다면, 코 앞으로 다가온 지구의 위기를 지연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덜어내고 덜 버리고'는 작가의 지속적인 실천을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다이어트로 몸무게를 덜어내야겠다는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주변 물건을 덜어내고,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갑자기 든 생각은, 여러 개 채널에서 방송되는 홈쇼핑에서 화장품의 기능과 용기의 화려함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환경 보전을 위해 기업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려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홈쇼핑을 통해 질 좋은 화장품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소비자는 '재활용 어려움'이 달린 예쁜 쓰레기까지 사는 건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로웨이스트와 웨이스트 그 사이 어디쯤.
환경보호에 안간힘 쓰는 인간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변화의 장면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게
훨씬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뒤집어지진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는 달라진다.



그 '무언가'를 <덜어내고 덜 버리고> 속에서 한 번쯤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덜어내고 덜 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