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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걸으면 보이는 | 이호준 사진에세이

by 토닥토닥서재 2022. 10. 10.

제철 사진

제철 과일이 좋다고 한다.
온도나 빛의 양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고, 오직 그 계절의
기후와 바람으로 자란 열매가 영양소도 좋고 사람의 몸에도
잘 스며든다는 얘기일 것이다.
일 년에 네 번, 계절에 맞는 소재를 찾아 촬영에 나선다.
봄꽃, 녹음방초, 단풍, 설경 등 계절에 맞는 익숙한 소재를
때에 맞게 찍는다.
아무리 찍어도 식상하지 않다.
사진의 리듬, 이른바 '제철 사진'이다.


사진 하단에 '2014. 4. 서울 부암동'이라 써있다. 글 왼편에 있는 사진.

 

제철 나물, 제철 음식도 아닌 제철 사진이라니. 이 참신한 단어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고, 철 따라 바뀌는 자연의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제 폰 갤러리에는 제철 사진으로 가득하거든요. 작가의 말처럼 아무리 찍어도 식상하지 않습니다. 

 

 

 

걸으면 보이는 / 이호준 사진 에세이 / 몽스북



제목이 멋졌던 페이지 하나 더 소개해보겠습니다. 

 

 

벼락같이 만나다

 

사진 여행 중 가장 짜릿한 순간은 예상치 못한 멋진 장면을

벼락같이 만날 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억 장치에 담았다는 뿌듯함은

행복감의 극치다.

중독처럼, 그 감정을 또 맛보고 싶어 오늘도 카메라를 챙겨

낯선 세계로 들어간다. 벼락같은 장면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결코 예상할 수 없는 출현이다.

삼각대 위의 카메라로 마주하는 것과는 다르며, 열심히

기다린다고 보이는 것도 아니다. 낯선 곳을 천천히 걸으며

내 시선에 애정을 담으면 어느 순간 마법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작가님은 사진만 잘 찍는 것이 아니라 센스 있는 단어를 고르는 안목도 뛰어나네요. 벼락같이 만나다, 왠지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예상치 못한, 행복감의 극치, 중독처럼.. 이런 단어 속에 작가가 사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껴집니다.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풍경들, 제철 사진이 궁금해져 책장 넘기는 손을 재촉했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그림, 사진, 일러스트 코너의 책을 꼭 한두권 꺼내서 휘리릭 넘겨 봅니다. 그림은 직관적이라 눈에 금방 들어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명화는 명화대로 긴 이야기를 담고 있고, 사진은 카메라에 담은 대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합니다. 작가처럼 사진을 찍을 때의 감회나 단상을 적은 사진 에세이는 보기도 편하고 가끔 이런 좋은 문구를 만나는 즐거움을 주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는 일은 일상 속에서 흔히 하는 행동입니다. 좋은 것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순간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 핸드폰의 카메라를 엽니다. 갤러리에는 무수히 많은 사진들이 쌓여가고 SNS에도 소식을 남기죠. 우리도 사진에세이 작가일지도 모릅니다. 사진을 찍고 코멘트를 달고 후에 추억하는 일, 각자의 일상을 차곡차곡 담고 기록을 남기는 것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넘치는 정보와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나만의 기록을 만들고 간직하는 것, 그러면서 잠깐 쉬어가는 것,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합니다. 사진 에세이 이 잔잔한 책 한 권 속에서 잠시 쉬면 어떨까요.  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