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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by 토닥토닥서재 2022. 6. 30.

"뭐 읽어요? 휴남동 서점? 휴남동이 어디예요?" 출근하는 직원이 묻는다. "휴남동은 진짜 있는 게 아니라 소설 속 동네에요." 하니 아 하고 웃는다. 작가는 소설을 구상할 때 서점 이름의 첫 글자는 '휴'로 시작할 것, 책방 대표는 '영주'이고 바리스타는 '민준'이다, 이렇게 딱 이 세 가지 아이디어만 갖고 첫 문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제대로 쉴 틈도 없이 하드코어 하게 흘러가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공간, 더 유능해지라고, 더 속도를 내라고 닦달하는 세상의 소리로부터 물러난 공간, 그 공간에서 부드러운 결로 출렁이는 하루'가 휴남동 가정집들 사이에 문을 연 평범한 동네 서점에서 잔잔하게 전개된다.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말이 제목 다음으로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이 소설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해요. 책, 동네 서점, 책에서 읽은 좋은 문구, 생각, 성장, 배려와 친절, 거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끼리의 우정과 느슨한 연대, 성장,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 그리고 좋은 사람들."

여기에 무엇하나 더할 것도 없이 나의 바람이 중첩되었다. 언젠가는 해보고 싶은 꿈, 서점. 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성장과 위안을 꿈꾸면서도 밥벌이라는 현실과 저울질하느라 한걸음도 못 떼고 있는 내가 보였다.

휴남동 서점의 북토크 강연을 온 작가는 '전에 읽던 책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지 않냐' 하는 영주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책은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몸에 남는다' 이 얼마나 적절한 문장인지. 빌린 책이 아니었다면 밑줄 좍에 별을 다섯 개나 칠 뻔했다. "아니면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기억나진 않는 어떤 문장이, 어떤 이야기가 선택 앞에 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하는 거의 모든 선택의 근거엔 제가 지금껏 읽은 책이 있는 거에요."

다 읽은 후에 책 내용이 마구 뒤섞이거나 사라진다해도 걱정할 일이 아니다. 책은 내 몸 어딘가로 스며들었을 테니까. "그 말씀을 들으니 안도가 돼요."라는 영주의 대답과 동시에 내 마음도 놓였다.

승우는 책을 낸 후 첫 북토크 제안을 영주로부터 받는다. 올바른 문장을 연구하는 블로거가 이슈를 몰고 다닌다며 출판사 대표를 통해 알게 된 후 관심을 가졌던 터였다. 영주는 작가를 모시고 싶어 정성스럽게 메일을 보냈다. 승우는 북토크를 의뢰한 영주의 메일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북토크 이후 영주가 기획한 글쓰기 강연을 수락하고, 영주가 의뢰받은 칼럼을 교정해주고,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오는 고등학생 민철의 첨삭 지도도 해주며 휴남동 서점을 드나든다.

바리스타 민준의 이야기에서는 이 시대의 청년 모습이, 내 아이들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힘들게 12년을 공부해서 수능을 보고 대입에 성공했지만 또 다시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는 고민을 안고 있다. '단추는 있는데 끼울 구멍이 없다'는 말은 취업의 어려움을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단추를 잘 만들었는데 반대편에 꿸 구멍이 없다는 것, 오로지 취업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단추들인데 들어갈 구멍이 없다는 것에 좌절한다. 민준은 웃픈 현실을 방황하다 우연찮게 휴남동 서점에서 일하게 된다.

민준, 승우 이외에도 로스팅 업체인 고트빈에서 원두를 파는 지미, 말없이 한켠에 자리 잡고 뜨개질로 수세미를 뜨는 정서 등 휴남동 서점에는 자주 혹은 가끔 드나드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라고."

 



근래 소설은 거의 읽지를 않았다. 해마다 읽는 주류가 조금씩 바뀌었는데 그 중 소설은 한두권 정도였다. 이유가 뭐였을까. 여유가 없었나? 생각해보니 그랬다. 한가하게 소설을 읽고 있을 수가 없었다. 왠지 소설을 마음이 편할 때 읽히는 책이란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재를 알고 미래를 대비하는 책이나,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을 주로 봤다. 그러다 마음이 울적해지면 심리서나 마음챙김을 도와주는 것을 찾아봤더랬다. 그런데 갑자기 소설이라니.

사실 제목만 보고 소설인 줄 몰랐다. 서점에 관련된 책이려니 했다. 다 읽고 나니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처럼 배려와 따뜻함이 있는 이야기가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휴남동 서점을 드나드는 모습도 상상했다. 퇴근길에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민준이 내려주는 커피를 받고 테이블에 앉아 영주가 기분에 맞춰 추천해 준 책을 읽는다. 그렇게 하루동안 쌓인 번잡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진정한 휴식을 하는 서점 속의 나.




민준과 대화에서 영주가 한 말이 무작정 읽고 있는 내 마음을 대변한다.

"자기를 들여다보는 데 능한 사람은 책 한 권으로도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자꾸 자극을 받다 보면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솔직히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난 믿어요."
"그럴까요."
"난 내가 후자라는 걸 알아서 열심히 책을 읽는 거거든요. 계속 읽다 보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갈 수 있겠지, 하고."

계속 읽다 보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겠지.  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