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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섬세한 수채화가 아름다운 그림책, 농부달력

by 토닥토닥서재 2022. 7. 10.

물기를 적당히 머금은 수채화를 좋아한다. 맑고 투명한 색감에 마음을 몽글몽글해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수채화로 표현한 작가 김선진의 세심한 관찰력에 '이렇게까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때가 되면 씨를 뿌리고 때가 오지 않아 기다리고
때에 맞춰 거둬들이는 한평생 농부의 계절을 보며 자랐습니다.
자연이 알려 주는 시기에 맞춰 농사 짓는 농부처럼,
정성껏 묵묵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림 씨앗, 글 씨앗 뿌려서
실한 그림책 열매를 수확했습니다.
맛있게 봐 주세요.
-작가의 글 중에서

작가의 말처럼 '실한' 그림책이다. 이토록 사계절 농사일을 아름답게 담은 책이 있을까. 농사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인 줄은 알지만 '정성껏 묵묵하게' 그린 작가의 색채가 땀으로 일궈내는 기쁨과 보람을 풍성하게 보여준다.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농부달력

 

책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부의 행동을 시간의 흐름으로 보여준다. 첫 페이지 '겨울을 겨울답게 난다는 것'을 보면 눈 쌓은 마당을 쓸고 있고 오른쪽 페이지로 넘어가면 둥그런 반상에 찌개와 김이 나는 밥이 놓인 밥을 먹는다. "밥 먹고 읍내에 다녀옵시다." 부인이 말하고 "그러세."라고 남편이 대답한다. 그리고 털모자와 털목도리를 단단히 챙겨 입은 부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모습이 오른쪽 하단에 이어진다.

 

봄이 오고 시골장에는 사람이 북적인다. "아이고, 성님, 잘 지내셨소?" 인사를 나누고 봄꽃 무늬 몸뻬바지를 사러 온 남자는 "제일 고운 걸로 한 장 주쇼."하고 말한다. 미장원에는 파마를 마는 동안 졸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

 

흙 속의 벌레가 깨어나는 시기가 되면 일손은 바빠진다. 들에 난 쑥을 캐고, 봄동은 겉절이를 하고, 냉이는 된장 한 숟갈 넣고 쓱쓱 무쳐 먹는다. "오메, 오진 것들!" 찰진 한마디에 미소가 번졌다.

 

김선진 그림책 농부달력



봄의 새순 연둣빛과 진달래, 개나리의 노랗고 분홍빛을 눈에 가득 담고 나면 어느새 여름, 시원한 빗줄기가 쉴 틈 없는 농사일을 잠시 쉬게 한다. 빼곡한 그림과 글을 쫓아 읽다 보니 짠 하고 비가 내린다. 강아지는 처마 아래에서 전을 부치는 할머니를 쳐다본다. 지글지글 전 부치는 소리와 빗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추잠자리가 벼가 고개 숙인 논 위를 날아다닌다. 건조한 가을바람에 깻대도 바짝 마르고 밤나무 아래에는 툭툭 터진 알밤이 있다. 자식에 보내 줄 것을 챙기고, 내년 봄에 씨앗으로 삼을 것을 구분한다. 창고는 수확한 마늘, 사과, 고구마, 고추 등으로 그득하다. 

 

그리고 다시 겨울, 눈이 내리고 부부의 집 지붕과 마당에 눈이 쌓인다.

 

 

 

김선진 그림책

농부달력

 

 

 

농부의 일 년 사계절 그림을 보며 아이와 얘기하기 좋을 그림책이다. 책 구석구석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이것 봐, 여기 이런 게 있네.' 하나씩 눈길을 이끌어주면 어떨까. 우리의 소중한 먹거리가 농부의 정성과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천천히 들려주자.

 

어렸을 때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어른도, 시골 감성을 그리운 다 큰 어른에게도 권한다. 세월은 지나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 한구석 간직하고 있는 시골 할머니집, 그곳에 뛰놀던 어린 나를 소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웰메이드 [농부 달력]을 이을 작가의 차기 작품도 기대된다.  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