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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마녀체력

by 토닥토닥서재 2020. 12. 17.

이영미 지음, 남해의 봄날, 초판 1쇄 2018.5.20. 14쇄 2019.12.15.

 

안녕하세요, 벨라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출판 에디터이자 트라이애슬론 선수인 이영미 님의 <마녀 체력>입니다. 게으름뱅이 저질 체력을 가진 직장맘에서 마흔 이후 시작한 운동으로 강하고 단단한 몸을 가진 후, 변화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자, 그럼 내 몸이 서서히 변해가는 동안~하나둘 행동이 바뀌고~이런저런 생각이 변하면서~그리하여,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로 이어지는 큰 목차 제목을 따라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책을 삼분의 이쯤 읽은 시점에서 작가가 궁금해서 자료를 찾다가 이 년 전에 찍은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경기도지식GSEEK콘서트이자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1001 회편이었는데요, '체력 하나만 달라져도 인생의 많은 것들이 변합니다.'라는 주제의 약 20분짜리 강연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마른 몸매라고 한 것만 기억이 났는데 작가의 실제 모습은 훨씬 왜소해 보였습니다. 듣는 동안 책에서 읽은 것은 복습하는 느낌이었지만 작가는 더 강해 보였어요. 작가가 선택한 운동 트라이애슬론은 철인 삼종경기로 무척 힘든 스포츠라 알고 있던 것이었죠. 트라이애슬론은 수영, 사이클, 달리기 이 세 종목의 스포츠를 함께 하는 경기입니다. 바다수영(3.8km), 사이클(182km), 마라톤(42.195km) 등 3개 대회 풀코스를 쉬지 않고 이어서 합니다. 제한 시간은 17시간으로 이 시간 내에 완주하면 철인(iron man) 칭호가 주어지는 아주 힘든, 저로서는 할 엄두가 전혀 나지 않는 경기입니다. 그것을 저렇게 왜소한 몸으로 해냈다는 것이 화면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운동, 건강에 대한 책은 목차만 봐도 절반은 아는 내용인 경우가 많습니다. 알면서도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은 일종의 자극제 처방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어떻게 운동을 할까, 무슨 운동을 할까, 뭐 새로운 것이 있나 하면서 읽게 됩니다. 작가가 하는 트라이애슬론의 중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것은 수영장하고 많이 다르다던데, 사이클은 위험해 보이네, 그걸 다 하고 또 마라톤이라니 정말 철인은 저런 사람이구나 했죠. 운동 종목은 그렇다 치고 저렇게 마르고 작은 몸으로 건장한 남자들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잘 해냈다니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작가는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있다고 합니다. 친구들 다섯 가족과 2박 3일의 지리산 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지리산을 올라가자는 쪽과 보성차밭을 둘러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는데 작가는 아이들도 봐야 하니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산행 대신 보성차밭으로 정합니다. 같이 간 남편은 지리산 등반을 선택했구요. 남편은 마흔이 되기 전 아들의 운동회 날 아버지 달리기 대회에서 큰 모션으로 그것도 두 번이나 고꾸라진 이후 충격이 몹시 컸던지 담배도 끊고,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동네 마라톤 클럽에도 가입하면서 체력에 신경을 쓰고 있던 차에 그 지리산을 다녀오게 된 것이죠. 비에 홀딱 젖은 추레한 모습이었지만 마치 남극에 다녀온 탐험대처럼 끝없이 무용담을 늘어놓는 모습이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마음을 진짜 불편하게 만든 이유는 유능한 워킹맘이란 말을 들으며 몸과 마음을 소진한, 체력이 안되어 가고 싶어도 '못'가는 부류에 속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고 해요.

 

"갈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젊을 때는 길을 몰라도 괜찮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알아도 일부러 안 걷는 거라며 객기를 부릴 수도 있었다. 의지만 있으면 걷는 건 언제든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걷지 않으면 결국엔 걷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점점 능력 부족, 경험 부족으로 접어든다.' p37

 

작가는 일단 집 앞 수영장에 새벽 강습을 등록합니다. 새벽 여섯 시부터 한 시간 동안 물속을 허우적대다가 회사에 출근하면 힘이 쫙 빠지고 잠이 쏟아져 죽을 지경이었는데 두세 달쯤 지나자 몸이 적응을 하는 게 느껴지고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고 해요. 새벽 수영 강습을 마치고 차 안에서 머리를 말리며 상쾌한 출근을 했던 오래전 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계속했으면 물개 비스무르 되었을 텐데 음주가무가 더 신났던 젊은 시절이라 저는 여기까지.

 

'수영을 배우면서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내가 해낸 운동량을 내 몸이 정확히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나는 25미터를 수영한 뒤 꼭 벽에 매달려 멈추곤 했다. 호흡이 가쁘니 잠깐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수영이 잘 늘지 않는다. 내 몸이 딱 25미터 간 거리만큼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50미터를 수영해 내면? 처음엔 힘들겠지만 몸은 곧 50미터에 맞는 폐활량을 기억한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체력이 생긴다. 즉 내 몸이 잘 기억하고 익숙해지도록 조금씩 운동량을 늘려 나가면서 꾸준히 강도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깨달은 모든 운동의 기본이었다.'p50

 

몇 번의 트라이애슬론 대회를 무사히 완주하기도 했지만 중간에 포기한 경기가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한강에서 열린 대회는 참가자가 많아 초반 몸싸움이 치열해서 강에 뛰어들었다 겁이 나서 포기했고, 철원 하프 대회에서는 다리에 쥐가 나서 달리기를 포기했고, 춘천 하프 대회에서는 수영 2킬로미터를 완영 하고 나왔지만 컷오프에 살짝 걸렸다고 해요. 연습한 것이 아까워서 심판에게 사정했지만 원칙대로 결국 안장에도 못 앉아보고 기록칩을 반납하게 됩니다.

 

'운동을 시작하고 대회라는 걸 나가면서 지금까지 해 보지 못했던 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숱하게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치고, 포기했다. 그러면서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분야가 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운동이나 놀이를 통해서 경험해보는 실패는 일종의 가상현실과도 같다. 스트레스 지수는 비슷하지만, 매우 안전하면서도 얼마든지 다시 도전해 볼 가능성이 열려 있다. 현실과 달리 큰 경제적 손실을 입지 않는다. 자주 두드려 맞고도 내일은 더 잘해 보겠다는 마음의 맷집이 강해진다.' p124-126

작가는 '우리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세 가지'란 부분에서 운동과 함께 독서외국어를 짚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사람을 매력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요. 겉모습과 다른 반전이 있는 사람은 멋있어 보입니다. 이런 멋있음을 장착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와 노력, 꾸준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지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귀찮다고, 시간이 없다고, 힘들다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마냥 방 안에서만 서성이지 말고 우선 문고리부터 꽉 쥐고 돌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시작을 했으면, 그것을 '핵심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매일 아침 일어나 이를 닦는 것처럼, 세 가지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작가의 목표라니 따라 해 보고픈 욕구가 일었습니다.

 

온종일 의자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며 일하는 현대의 사무직 노동자에게 왜 자전거가 필요할까? 하는 부분에서는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쓴 홍은택 님의 말을 담았습니다. '첫째, 육체적인 도전을 통해서 정신적인 안식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페달 밟기는 사고를 단순화시키는데 최고다. 둘째, 앉아 있는 삶에서 움직이는 삶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도시 속 사무실 생활은 사람을 수동적이며 욕구불만 상태로 만든다.' 지난봄에 따르릉을 타고 한강까지 가려던 무모한 도전이 생각났습니다. 달리다가 1/2 지점에서 망설임 없이 돌려왔었거든요. 그냥 페달만 밟는 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저속으로 주행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 되었고, 좁은 길에 맞은 편에 자전거가 오면 겁이 났습니다. 다리를 건널 일이 생기면 불안한 마음에 머리가 아프기도 했구요. 자전거는 나한테 맞는 운동이 아니야, 두 발로 걷는 게 편해라고 그 뒤로 줄곧 생각했는데..그랬는데 작가의 말을 듣고 망설이는 제게 다시 해볼래?라고 용기란 놈이 물어보네요, 이런.

 

<미생> 4권에서 프로 기사가 된 장그래를 앞에 두고, 사범은 바둑만 잘 두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바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체력'이라고 말한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서,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 

정신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체력이다. 날이 선 정신노동자로 길게 살려면 무엇보다 체력부터 키워야 한다. 체력이야말로 죽는 순간까지 키우고 유지해야 할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다. 이제 좀 설득이 되는가? p222

 

체력에 대해서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접한 것은 처음입니다.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몸을 만들어야 한다, 건강을 위해서 이렇고저렇고라는 책은 종종 봤지만, 이렇게 체력이 포인트가 되는 책은 처음이었어요. 저를 감싸고 있는 게으름과 우울이 부실한 체력 탓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바구니 달린 자전거부터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렇다고 작가처럼 부산에서 서울까지 대장정을 달리고자 하는 것도, 구불구불한 최고난도 미시령을 오르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트라이애슬론 선수인 작가의 마녀 체력을 닮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이 들수록, 노년이 될수록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체력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잘 죽기' 위해서다.'라는 작가의 말이 더 와 닿습니다. 잘 죽기 위해서, 내 몸을 잘 사용하다 떠나기 위해서란 생각이 듭니다. 반복되는 다이어트로 몸이 망가지고 있다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몸을 만들고 있다면, 건강에 관심이 많다면 일독해 보시길. 또한 수영, 마라톤, 자전거에 대한 작가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이 궁금하시다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책입니다. 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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