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by 토닥토닥서재 2020. 12. 22.

김원희 지음, 달 출판사, 2020.8.13. 초판 발행

 

안녕하세요,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당당한 70세를 누리고 있는 김원희 님의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입니다. 다양한 연령층의 작가의 책을 보았지만 70대 여자 작가의 책은 잘 접하지 못했습니다. 좀 낯설었지만 곧 호기심이 생겼어요. 70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어요. 뭐랄까 곧 다가올 미래를 보는 느낌이었달까요. 블로그와 첫 책 <쓰기로 했다>에 밝힌 저의 소개글 '백발이 되어도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즐기는 멋진 할머니가 꿈이다.'의 현실판인 것 같기도 했구요. 제목 '멋진 할머니' 이 부분이 책을 픽한 이유가 되었네요.

노인이 되면 먼길 여행도, 집 떠나는 것도, 무언가 새로운 일을 저지르는 것도, 남은 인생의 육신을 위해서 삼가야 한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오히려 가야 할 길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남아 있는 육신을 맘껏 쓰고 가야겠다 생각하면,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나이 70세, 여행하고 작가가 되는 기적!' 이라는 문구로 책은 시작됩니다. 친구들, 딸, 가족과 함께 한 여행길에서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를 블로그에 올리고, 그것을 묶어 이렇게 책으로 출간을 했네요. 100세가 되어도 당당하게 캐리어를 끌겠다는 포부가 당찬 할머니의 꿈을 절로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이 나이에, 다 늙어서 무엇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가 쉽다. 젊었을 때는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고 타인의 시선도 신경 쓰여 자유롭지 못했지만 나는 이제 국가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누구도 질타하지 않는 나이'를 살고 있다.

아직 학령기인 아이들이 있고, 뒷바라지를 앞으로 수년은 더 해줘야 할 부모인 입장으로 노년의 생활은 그리 쉽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당장 이번 달의 수입과 지출을 따져보고, 대학등록금과 학원비, 대출금 등등을 두드려 봅니다. 앞으로 1, 2년 근시안적인 면에 급급하고 있었어요. 인생 선배의 글을 보니 연륜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가 겪지 못한 경험에서 자연스레 우려 나는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또래 친구들은 곧잘 나보고 체력이 대단하다고 한다. 이 나이에 비행기를 장시간 타고, 모르는 곳에 종일 걸어 다니니 보통 체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영양제를 많이 챙겨 먹는다. 비타민은 기본이고, 홍삼, 주기적으로 힘이 없다며 봄에는 보약, 어디에 뭐가 좋다 하면서 철에 맞는 음식을 찾아서 먹는다. 그런 사람일수록 요즘 힘이 너무 없어,라고 자주 말한다. 가끔 그것은 '내 나이가 들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좀 쉬어야 해. 나를 좀 배려해줘'라는 상대에게 전하는 무언의 암시로, 과하게는 어리광으로 보이기도 한다.
노화를 막을 수는 없다. 더욱이 피로는 우리가 살면서 매 순간 극복해야 하는 무형의 적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장수가 결코 축복은 아니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면서, 자꾸만 축 처지는 내 육신과 감성을 일으켜보면 어떨까.

어느 정도의 체력과 의지가 있어서 여행길에 올랐어도 불의의 사고나 건강상의 이상이 염려되는 나이입니다. 외국에 나가서 갑자기 죽게 되면 자식들한테 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한국으로 돌아올 수는 있는지 걱정이 되지요. 작가는 '수명이 다된 마당에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어디서 죽든 마찬가지다.'며 이것만 준비하면 걱정할게 없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자필의 화장 승낙서, 이것을 휴대하고 다니면 어느 나라에서건 화장하여 유골로 만들어준다고 하네요. 유골이라면 운송비도 그다지 들지 않고, 항공사에서 싼 가격으로 작은 상자에 넣어 보내줄 거라고. 늘 여행을 꿈꾸는 1인으로서 메모를 하게 됩니다. 자필의 화장 승낙서, 밑줄 좌악.

 

작가의 건지섬에 간 이야기가 있습니다. 건지섬은 영국해협에 흩어져 있는 여러 개의 섬의 집합체인 채널제도에 속해 있고, 그중 가장 큰 섬이라고 해요. 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란 책을 세 번 읽고 이끌리듯 방문하게 됩니다. 작가는 이 책의 내용을 두 바닥에 걸쳐 썼는데 제가 몇 줄로 요약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건지섬 주민들은 독일군의 점령으로 고립되어 자유를 빼앗기고 굶주렸다. 몇몇 이웃이 모여 몰래 밥을 먹다가 통금시간인 7시를 넘긴 귀가길에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취조를 받게 된다. 그때 젊은 여성이 재치 있게 정기적인 모임인 건지섬 문학모임에 다녀오는 길이라 둘러대서 위기를 모면하게 되고, 그 자리에서 어쩌다 만들어진 문학회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독일군에게 알리기 위해 겨우 글만 아는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어야만 했다. 그러다 책을 읽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내가 독서를 좋아한다. 책 속의 작은 공간 하나, 책 속에 묘사된 그곳의 하늘과 땅, 식당, 기차역, 사람들, 은밀한 사랑과 모험, 그곳은 어떨까? 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게 하고, 그곳을 동경하고 그곳으로 떠나는 꿈을 꾼다.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있을 때의 환희. 지금, 나는 건지섬, 환희의 순간에 있다.

작은 농가의 하나 뿐인 식당의 소리 없는 벅적거림, 옆 테이블 할머니들의 작은 수다 소리, 평화가 가득하고 조용한 건지섬. 책을 통해 알게 되고, 가보고 싶었고, 결국 그곳에 있는 순간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노르망디 근처의 영국해협 한가운데 있는 사크섬은 국제 어두운 밤하늘 지키기 운동본부에서 섬으로는 최초로 '어두운 밤하늘 공원'으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마을 길가에 인공 빛 하나 없고, 그래서 더 깜깜한 밤하늘에 손바닥만 한 별이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는 작가는 이곳 여행을 '이번 생애 여행의 정점을 찍었다'라고 말합니다. 별 보기를 좋아하는 저도 가슴이 뛰는 문장이었어요. 손바닥만 한 별이 밤하늘을 수놓는다니. 

다음 생에는 이곳에서 태어나도 좋겠다. 이 섬 울타리 안에서만 생을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밤하늘이 유난히 어둡고, 별이 유난히 반짝이는 동네. 자연의 빛을 받아들이며 우주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단순한 삶.
왜 이 생각이 이 나이에서야 드는지. 좀더 악착스럽게 일하고 벌어서, 자식들 잘 먹이고 잘 공부시키고, 좀 더 큰 집에서 남들 다 하는 것들을 하고, 그런 만큼만 살자, 하며 열심히 산 시간이 갑자기 부질없어진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짧아진 내 생의 시간뿐인걸.

노후의 시간이 어떨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100세 시대, 노후의 긴 시간을 어떻게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내 맘속에 우주가 있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사물과 환경을,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가의 마무리 글에서 용기를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하루는 지루할 사이 없이 충만하게 흘러가고, 나는 이 프리랜서 일을 할 수 있는 날까지 할 것이다. 다리에 힘이 있을 때까지, 아니 조금 힘이 없으면 어떤가,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 여행도 떠날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100살이 되어도 캐리어를 끌 수 있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며, 자기의 일을 한다는 것이. 설령 허황한 꿈이어도 좋다. 꿈꾸는 그 순간도 삶의 연속이니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하고 싶은 게 있고 꿈을 꾸는 멋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싶은 분이라면 책 속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 책이었습니다. 쫑.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 나의 책  (12) 2020.12.31
부의 추월차선  (0) 2020.12.29
어쩌겠어, 이게 나인 걸!  (2) 2020.12.19
마녀체력  (1) 2020.12.17
내가 본 오늘이 첫 눈  (2) 202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