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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서재의 책과 일상
BOOK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by 토닥토닥서재 2021. 1. 2.

10년 차 서점인의 일상 균형 에세이

김성광 지음, 푸른 숲, 1판 1쇄 2020.2.28. 1판 2쇄 2020.4.10.

 

안녕하세요, 벨라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첫 직장에서 10년을 넘기고 있다는 대형 온라인 서점의 MD인 김성광 님의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입니다. 제목이 딱 제 마음이었습니다. 

휴일 오후 뒹굴뒹굴 좀체 배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 딸아이를 마트에 가자며 유인해서 일단 밖에 나왔습니다. 나온 김에 동네 한 바퀴 돌자 했죠. 다행히 날씨는 춥지 않았고 접어든 길이 나지막한 산 옆이라 공기마저 상쾌했습니다. 체육관 운동장을 열 바퀴만 돌까 물었더니 "그건 에바야."합니다. 그래서 그냥 휘적휘적 걸으며 운동하는 사람들, 아이와 공놀이를 하는 아빠들, 산책나온 반려견들의 앙증맞은 뒤태를 구경했습니다. 체육관 운동장은 딸아이가 어렸을 때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탔던 곳입니다. 어린이날은 텐트를 치고 치킨과 과자를 먹으며 행사를 구경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린이날은 게임을 운영하는 부스에서 봉사활동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딸아이는 걸으며 어렸을 때 휴양림에 여러 가족과 놀러 갔을 때가 재밌었다는 둥, 친구들과 여기 어디서 놀았고, 졸업앨범을 저기에서 찍었다는 둥 여러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고3입니다. 하루하루 아이들이 커가는 시간이 소중해서 육아일기도 오래 썼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일기를 이어가고 있구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첫 돌이 되기까지, 그리고 엄마 통역이 필요한 대화의 시기를 지나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서툰 아빠의 육아 이야기를 곳곳에 풀어놓았습니다. '독자들에게 책을 잘 소개하고, 책과 책을 연결하는 일을 하려면 많은 책을 알아야 했다. 많은 책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많은 책을 읽어야 했다.' 괜찮은 서점원이 되려는 이런 노력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 바꿔야 했습니다. '아이는 한 시간 반마다 깼고, 아이가 깨면 부모도 깨야 했다. 낮이나 밤이나 한 시간 반 간격이었다. 수시로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다시 안아서 재웠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교감하는 시간도 충분히 필요했다. 돌보는 기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 시간을 온전히 들이는 일이 바로 기술이었다.' 내 시간을 온전히 들여야 하는 일, 쉬지도 먹지도 잠을 편히 잘 수도 없는 시간을 지나온 부모라면 쉬이 공감이 갈 것입니다. 처음이라 겪는 시행착오와 불안, 걱정을 읽으며 부모라는 이름과 나라는 이름의 균형점은 결국 부모 쪽으로 기울게 된다는 말에, 맞아 저절로 그렇게 돼버리지 했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책 읽는 시간을 반의 반 토막으로 줄였어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물음이니까. 밥 먹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아이가 잠든 새벽에 집을 나가 시간을 만들기도 했다. 한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우던 내가 10분, 20분 단위로 시간을 확인하며 일정표에 할 일을 채워 넣었다. 그래도 나 자신에게 던진 물음에 하나하나 답하기엔 시간이 태부족했다. 카페에 홀로 앉아 특별할 것 없는 생각들을 노트에 써보는 정도였다. 

부모이자 서점원으로서 생각하고 싶은 것과 생각할 여유가 없는 날들의 풍경을 간헐적 일기로 썼다고 합니다. 순간적인 생각들을 붙잡으려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서. 책 곳곳에는 작가의 이런 조각의 시간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아주 가까운 타인'이라고 메모한 부분을 다시 펼쳐 읽어보았습니다.

내게 주어졌지만 내가 좌우할 순 없는 일들이 있다. 회사 생활도 그렇다. 회사는 말이 아닌 숫자로 지시한다. 내 이름 옆에 매출 목표를 기록해둔다. 내가 팔아야 하는 책의 양은 1년에 몇 백억 단위. 그러나 목표 달성 여부는 내가 노력한 정도와 꼭 비례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비슷해 보인다. 모든 부모는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목표와 책임을 부여받지만, 실제로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부모가 온전히 좌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성장 과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그에 맞게 적절히 개입해 아이를 '올바른 인간'으로 길러낸다는 생각은 사실상 '환상'에 불과하다.
아이를 좋은 모습으로 이끌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마음이지만, 부모가 이끄는 대로 아이가 자란다는 보장은 없고 부모의 인도대로 자라는 게 꼭 좋다는 보장 또한 없다. 아이의 세계는 부모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부모의 시야가 미치는 면적은 언제나 아이 삶의 영역보다 좁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지녀야 할 태도란 부모의 최선과 아이의 최선은 다를 수 있다는 걸 담담하게 수긍하는 일이 아닐까. 최선의 노력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아이와 긴 소통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는 나로부터 왔지만 완전히 다른 독립체입니다. 아주 가까운 타인이란 말을 곱씹게 되네요. 품에서 떠나는 날이 오면 이렇게 마음이 쉽게 정리가 될까요? 아무래도 평소에 조금씩 내공을 쌓아 둘 필요가 보입니다. 책을 꾸준히 봐야 할 부분이네요. 작가는 일과 육아를 잘하고 싶고, 시간이 없는 것도 이 둘이라고 말합니다. 직장과 집에서 모두 잘하고 싶은 건 대부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둘 중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 잘하는 것보다 둘 모두를 잘 해내고 싶은 제 마음과도 같았습니다. 또 책 읽는 것을 일을 잘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살면서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책 속에서 답을 찾는 과정이 재밌었습니다. 많은 책을 읽고, 생각을 연결하는 것은 업으로 하는 작가를 따라가기에는 힘들겠지만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슬쩍 보이는 작가의 책에 대한 욕심은, 책꽂이, 화장대, 소파에 책을 양껏 쌓아두는 제 마음 같아 피식 웃음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책은 거기서 끝난다'는 부분. 책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그것으로 끝나는 것임을 매번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내뱉은 적은 없어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문장이었습니다. 나의 시간을 할애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 책 속의 인물들을 만나는 것도 그만, 스토리는 이렇게 끝이 난 거고, 감동과 다짐은 물에 떨어뜨린 한 방울 물감처럼 스르르 사라질거야하는 기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칭찬받을 만하고, 책의 영향력은 자주 상찬 되지만, 때로 책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책이 삶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꽤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우리는 삶으로 돌아오고, 책은 거기서 끝난다. 세상은 책 바깥에 있다. 아름다운 책을 판다고 내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훌륭한 책을 읽는다고 삶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한 방울의 물감은 곧 사라지고 물은 제 빛으로 돌아오지만, 그때는 완전한 H2O가 아닌 미미하나마 물감의 지분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또 한 방울, 한방울 계속 떨어뜨리면 물은 이내 색을 바꾸겠지요. 책이 삶으로 이어지는 문턱은 정말 높습니다.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 그렇습니다. 이유가 뭘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유리 같은 의지가 첫 번째고,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환경, 뭘 좀 하고 있으면 나를 부르는 아이들과 남편, 해야 하는 집안일 등이 변명거리로 떠오릅니다. 그러면 작가처럼 새벽시간을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새벽에 잠을 못 자면 하루 종일 머리가 멍해서 체질적으로 잘 안됩니다. 여하튼 구구절절한 변명을 소진시키는 방법은 계속 읽는 것입니다. 읽고 생각하고 실행하고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 게으른 저를 위해 찾은 답입니다.

'선택과 집중'보다는 '적절한 밸런스'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대단히 잘할 때보다, 어느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모습이 멋집니다. '지하철 같은 칸에 책을 보는 사람이 있거나, 정말 우연히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면 묘한 동료애를 느끼기도 한다.'며 책의 인연(서연, 書緣)을 말한 작가에게 저도 묘한 동료애가 느껴집니다. 이렇게 좋은 인연, 서연으로 나도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2021년을 시작해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도 올해 좋은 책을 통해 성장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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